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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엔젤, 한국형 판타지 로맨스?

데미엔젤, 한국형 판타지 로맨스?
개인적으로 20대 후반부터는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았다. 20대 중반까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만 했던 아픈 추억들 때문에 때로는 슬픈, 때로는 아름다운 영화, 음악, 책 등을 보고 들으며, 주인공과 공감하며 아픔을 달래기도 하고, 주인공의 행복에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감성이 폭발할 때면, 암울한 기운 또한 함께 폭발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부터 일부러 감성적인 책들은 멀리하고, 자기계발서에 심취했었다. 그러다 최근 북곰에서 제공받은 <데미엔젤>을 읽고 다시금 내 감성이 여전하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물론 잘 감춰두고 있지만..)


한국형 정통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데미엔젤>은 '천사와 사랑에 빠진 소녀'라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 <트와일라잇>이 여성들의 지지를 얻으며, 현실적인 로맨스가 아닌 판타지적인 로맨스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해외에선 이미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주제를 가진 소설을 쓴 작가가 있구나.. 란 생각에 기대를 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처음 놀랐던 점은 이 소설을 쓴 작가 '주예은'이 90년생이라는 점이었다. 언젠가는 책을 집필하겠다는 목표가 있는 나로썬 한참 어린 작가가 벌써 2권 분량의 소설을 썼다는 점에 부러운 마음부터 생겼다. 작가의 나이를 1권 중반까지 보고 난 다음에 알았는데, 필력이 괜찮아서 나이가 좀 있는 작가가 쓴 소설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꼈다.

음, 좀 쓸데 없는 얘기가 길어졌는데, 소설 <데미엔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천사가 남주인공으로 나온다. 여주인공 '준'은 어릴적부터 학대를 받고 자라와서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고, 항상 불안함을 감추고 살아온 약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베룬(악마)이 되는 것도 과감히 받아들인 천사가 나타나면서 모든 현실이 바뀌게 된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모든 사랑 자체를 불신하면서 한편으론 사랑을 받는 것에 몹시도 목말라 있는 그녀는, 운명처럼  천사와 사랑에 빠진 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불신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에 사랑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한 그녀의 영혼은 완전하게 자신을 다 주는 로이에 의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배워나가며 차츰 치유되고, 데미엔젤인 로이는 사랑하는 여자 인간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버린다는 것이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사실 1권 반정도까진 데미 엔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전체적으로 현실적인 내용보다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아서 로맨스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데미엔젤인 '로이'가 나타나며,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 스타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이어가던 판타지적인 요소를 좀 더 많이 다루고, 간간히 로맨스 요소를 넣어뒀다면 한국판 <트와일라잇>으로 불릴 수도 있을만큼 괜찮은 소설이 될 뻔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판타지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그저 로맨스 소설로 봐야할지 아리송한 부분이 많다. 천사라는 단어와 캐릭터의 설정으로 이 책을 판타지라고 생각해야 할 지, 아니면 그저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해야 할지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오래전부터 정통 판타지부터 퓨전 판타지까지 다양한 판타지 소설을 접하다보니 판타지적인 초반 전개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보기 시작해서 기대감이 컸던것 같다. 즉, 정통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 책은 영~ 아니올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고지순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한 여자를 지키려고 애쓰는 천사의 사랑에 감명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작가와 여주인공의 국적, 이야기의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전개가 기독교의 천사와 악마를 차용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과연 한국형 판타지 로맨스라고 불릴만한가도 의문이 든다.

어쩌다보니 비판을 하듯 글을 쓰고 있는데, 실제로 1권부터 2권까지 쉬지 않고 흥미롭게 읽었고, 몰입도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영국이야기가 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영국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애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책 속의 대사에서도 조금 과장하자면 거의 영어가 반, 한국어가 반이었다. 그렇다보니 굳이 대사를 영어로 이렇게 줄줄 써둘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자주 하게 된다. 한국인이 쓴 판타지 로맨스 소설은 어떤 것일까 많이 궁금했었고 기대를 많이 했고, 트와일라잇까진 바라지 않았으므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애매하게 채용한 판타지적인 요소가 오히려 책 전체적인 흐름을 끊기도 하고,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부분도 꽤 있어서 아쉽긴 했다. 그래도 모처럼 출판된 한국의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고, 처음 이름을 들어보는 신인 작가의 작품치고는 즐겁게 읽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데미엔젤>이 <트와일라잇>처럼 시리즈 형태로 더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음 시리즈도 구매해서 읽어보고 싶은 정도면 결론적으론 잘 쓴 소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 시리즈엔 좀 더 완성도 높은 글을 기대해본다.

評 하늘다래